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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민정구6 본문

지리릭

효민정구6

ㄱㅏ가 2016. 10. 3. 13:17
다 다른 거임 이어지는 거 아니다 
 
1. 정구가 사람을 죽인 날 밤에는 언제나 효민이 곁에 있었다. 흐르는 물에 굳은 피는 씻겨 내려갔지만 냄새는 그리 쉽게 씻겨나가지 않았다. 제 열 손가락을 빨아제끼던 효민이 속삭였다. 피 냄새 난다. 손을 씻을 때에 문득 생각나는 일이었다. 앞으로는 기억으로만 남을 일. 
 
2. 비현실적인 아침이었다. 효민이 없어도 아침은 왔다. 당연한 일이라지만 와닿지 않았다. 효민은 언제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듯 굴었기에 효민을 내려칠 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네가 죽으면 이 세상은 같이 사라져버리는 걸까. 허나 아침은 왔다. 이게 환상이든 무어든 아침이 오기는 왔다. 그럼 밤도 올 테고 여름도 올 테지.
하루가 지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자 정구는 효민이 죽었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닷새가 되던 날 밤에 정구는 기어코 아지트를 다시 찾았다. 자리고 모양이고 무엇 하나 그 날과 다를 것 없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꺼먼 무언가가 제게 말을 걸었다. 변하는 거 없어 변하는 거 없어 변하는 거 없어 변하는 거… 시끄러워, 씨발! 정구는 도망치듯 뛰쳐나와 차에 올라탔다. 헉헉대며 차에 시동을 걸자 이게 또 말을 안 듣는다. 너무 추워서 그런 건지 차가 낡아서 그런 건지 엔진에 문제가 생겼나보다.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엔진을 들여다보며 그냥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오늘 그냥 여기서 잘까? 옆으로 돌아보면 아지트와 도로를 가로막는 파랗고 노란 풀들이 정구와 효민의 발자국 아래 밟힌 풀과 돌과 눈으로 길이 나 있다. 저 안에, 그리고 그 안에, 다시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효민일 뻔했던 무언가가 자신을 흘겨보고 있을 것이다. 효민은 가끔 정구에게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과대망상에 시달린다 무어라 했던 적이 있다. 존나 정확하네 씨발년…. 그런 줄 알면서도 정구는 시름을 멈출 수 없었다. 금세 조수석 문을 따고 들어와 제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그럼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손목을 붙잡고 벌벌 떠는 것밖에 없을지 모른다. 정구는 자신이 왜 이렇게 불안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조수석에 놔둔 작은 박스 하나가 위협적이었다. 
 
3. 품에 닿는 정구의 숨이 따뜻했다. 뜨겁다거나 한 건 아니고 좀 기분 나쁜 습함과 따뜻함이었다. 허리를 쳐올리면 목에 감기는 팔이라든지 반쯤 감긴 눈이라든지 전부 박정구답고 상상했던 것들이라 웃기고 또 생각만큼 생각 그대로 야했다. 그리 넓지 않은 방 안에 사내 둘 헉헉대는 소리로 가득 차자 정구는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래. 효민이 물음 아님 물음을 던지자 도리질 친다. 아, 헉, 학. 효민아 잠깐만. 나 진짜 잠깐만 기다려봐. 씨발 뒤지겠, 아, 흑!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개를 꺾었다. 효민은 말이 없었다. 형, 씨발, 형. 마지막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는 묵직한 신음과 탄성만이 오갈 뿐이었다. 
 
4. 곁에는 이효민이 없고, 차 조수석 창문이 열릴 일은 없었으며, 운전하다가 입을 열어 조잘조잘 떠들 일도 없었다. 타는 사람이 없고 치우는 사람이 없으니 뒷좌석에는 짐이 쌓여가고 번호판은 때가 타기 시작했다. 뒷좌석 어딘가에는 효민이 입던 겉옷이나 바지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을 것이다. 정구는 그를 치우기에는 너무 지쳤고 그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예민했다. 그래서 그냥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효민의 흔적 위에 쌓이는 새로운 시간이 길었다.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달이 되고 반년이 되고 일년이 흘러 그렇게 다시금 겨울이 찾아왔다. 바쁘게 사니 바쁘게 흐르는 시간은 정구에게 다른 생각을 할 시간조차 내주지 않았다. 이러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가만히 있으면 저를 잠식해가는 분노에 정구는 손을 떨었다. 폭탄. 정구는 폭탄에 손을 대지 않았다. 형 변하는 거 없어. 괜한 오기였다. 겨울이 오자 잊고 살던 효민의 흔적이 눈 사이 사이에서 싹을 피우기 시작했다. 겨울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 백교수. 차. 옷. 거울. 집. 책. 어느 곳을 봐도 효민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효민이 죽고 난 뒤 처음 맞는 겨울은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워 정구는 심호흡을 했다. 씨발 내가 너를 닮아가나보다. 들을 사람 없는 말을 건넨 정구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밤새 눈이 와 차 유리에도 가득 쌓인 것을 치우며 행선지를 생각했다. 염병 씨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고작 이효민 때문에 내가 이래야 하나. 오랜만에 찾은 아지트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일 년여 전의 폭발 때문인지 성한 도구는 몇 개 없었고, 구석에 남겨진 핏자국 가운데에… 
 
이효민이 없다. 
 
5. 집 안 가냐? 뭐가 좋다고 들어가. 너 자취하는 집 있잖아. 왜, 형은 없어? 없어 집 자체가. 있으면 좀 들어가 살라 그랬더니. 아 그럼 가족도 없어? 있어. 근데 왜 안 가 형은. 어떻게 가. 생산자님이라서? … 그건 그렇고 집에 안 들어가면 잠은 어디서 자. 말 돌리는 거 봐라. 여기저기서 자 그냥. 형은? 난 차에서 자는데. 얼마 전까지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어. 그럼 그냥 우리 집에 얹혀 살어. 그래도 되냐? 안 될 건 뭐야. 너 진짜 막 사는구나. 알빠세요? 지는 뭐 제대로 사는 것도 아니면서 지랄이야. 앞으로는 제대로 살 거야. 지랄 마라. 
 
6. 야 이효민. 왜 또. 너희 아버지 뭐 하는 사람이냐? 아 그건 왜 또 물어 씨발. 보통 사람 아닌 것 같아서. 씨발 그럼 우리 꼰대가 보통 사람이겠냐 아들을 이따구로 키웠는데. 그건 그렇네. 존나 그럴싸하다…. 뭐가 그럴싸해 이 양반아 ㅋㅋ 박정구 진짜 미치겠네. 근데 농담 말고. 뭐 하는 분이셔. 분은 무슨. 걍 이거저거 다 해. 캐묻지 마 시발. 뭘 캐물어. 넌 날 다 아는데 난 너 아는 거 하나도 없잖아. 우리가 뭐 사귀기라도 하냐? 웃긴 새끼야 진짜. 야 꼭 사귀어야 그런 거 알 수 있냐? 하긴. 난 형이랑 사귀어도 안 알려줄 거야. 그 소리 아닌데…. 아 이름 나이 성별 알면 됐지 뭐가 그렇게 궁금해. 근데 넌 왜 내 뒷조사 하구 다니는데. 병신아 그건 니가 흔적흔적 지랄을 해대는데 다 흘리고 다니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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