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Страна для меня
산타 정구와 루돌프 효민의 험난한 선물 전달 여행 산타 정구는 썰매의 창문을 닫았어요. 루돌프 효민이 조수석에 앉지 않고 뒷자리에 앉는 바람에 조수석에 한가득 쌓여 있는 담요와 옷가지들이 시야를 가렸기 때문에 산타 정구는 왼쪽 바깥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산타 정구는 꿋꿋이 옷가지들을 손으로 내리누르며 열심히 썰매를 몰고 있었답니다. 요새는 세상이 좋아져서 루돌프 효민이 썰매를 끌지 않아도 기름을 넣고 엑셀을 밟으면 저 혼자 나아가는 썰매를 타고 산타 정구는 선물을 전달할 수 있었어요. 날은 아직 어두웠습니다. 옆에서는 루돌프 효민이 끌라는 썰매는 끌지 않고 산타 정구의 선물을 뒤적거리고 있었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명? 선물을 보내줘야 하는 아이들의 명단을 보며 루돌프 효민이 산타 정구..
다 다른 거임 이어지는 거 아니다 1. 정구가 사람을 죽인 날 밤에는 언제나 효민이 곁에 있었다. 흐르는 물에 굳은 피는 씻겨 내려갔지만 냄새는 그리 쉽게 씻겨나가지 않았다. 제 열 손가락을 빨아제끼던 효민이 속삭였다. 피 냄새 난다. 손을 씻을 때에 문득 생각나는 일이었다. 앞으로는 기억으로만 남을 일. 2. 비현실적인 아침이었다. 효민이 없어도 아침은 왔다. 당연한 일이라지만 와닿지 않았다. 효민은 언제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듯 굴었기에 효민을 내려칠 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네가 죽으면 이 세상은 같이 사라져버리는 걸까. 허나 아침은 왔다. 이게 환상이든 무어든 아침이 오기는 왔다. 그럼 밤도 올 테고 여름도 올 테지.하루가 지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자 정구는 효민이 죽었음을 믿을..
담배도 안 피는 놈이 얻다 썼는지 기름도 얼마 남지 않은 라이터로 초에 하나 하나 불을 붙였다. 어두운 방에서 타들어가는 초를 보고 멍하니 웃는 정구를 보다 효민이 또 따라 웃었다. 의도치 않게 분위기나 잡았다고 생각했다. 땡 잡았네. 그러더니만 효민이 정구에게 키스했다. 키스는 흔치 않게도 단 맛이 났다. 지금껏 단 맛이 나는 키스는 거의 좆같은 딸기맛이나 레몬맛밖에 없었는데,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는 크림같은 단 맛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효민이 무게를 실어 밀자 정구는 뒤로 밀려 넘어지다시피 누운 자세가 되었는데, 그 때에 왼손에 질펀하게 무언가 짚였다. 케이크였다. 아, 이거 비싼 거랬는데. 이미 초는 다 녹은지 오래라 케이크는 분홍 노랑 어쩌구로 촛농 범벅이었고, 어차피 먹을 수도 없는 케이크 좀..
한석율은 빛났다. 언제고 어디서고 할 것 없이 한석율은 반짝였다. 언젠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 돌린 석율이 그래를 향해 미소 지었을 때 그래는 황급히 시선을 내린다. 부끄러웠다. 한석율을 만나고 나서야 그래는 웃으면 안 예쁜 사람 없다, 하는 말의 뜻을 그제야 알아차린 듯 싶다가도, 공부할 때나 다툼을 벌일 때 언뜻 보이는 무표정함과 무감각에도 한석율을 보며 그 말도 어쩌면 거짓일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 짓는 석율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가 예쁜 거라고. 그래는 혼잣말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는 것 같아. 대박. 완전 예뻐. 석율이 오두방정을 떨며 제 옆 친구를 때렸다. 아 왜 때려! 고함치는 친구에게 가만히 있어봐, 이 년아. 하며 한 마디 해주고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분명 작년에 같은..
무휼, 입 벌려. 방지의 낮은 소리가 방을 울렸다. 자욱한 담배연기에 코 끝이 마비되고, 그 몽롱한 자태에 다시 한 번 손끝이 저릿저릿하다. 다섯 개비 째 재떨이에 비벼 끄는 담배 꽁초 끝에서 붉은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하얀 연기를 뱉는 입술이 가까이 다가오고, 제 위에 걸터앉아 뒤통수를 쓰다듬는 손길에 무휼은 그저 몸을 내주었다. 섹스의 주도권은 언제나 방지에게 있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첫 섹스에 방지가 정신을 잃자 한참을 뜸 들이던 방지가 한 마디 한다. 너는 가만히 있어. 무휼은 정사에 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문득 방지가 불평하듯 중얼인 말을 기억했다. 너는 너무 힘으로만 몰아붙여. 그들의 방은 언제나 어두웠으며, 언제나 희뿌연하여 서로를 바라보는 것조차 방해가 되었다. 방지가 무..
현대 AU 무휼방지 여름. 그 언제보다 질기게 삶을 갈망하게 되는 계절이다. 잠에서 깰 적에는 목 언저리의 땀들에 끈적끈적한 상태로 화장실에 들어가고, 잠에 들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감정이 날을 세우고, 모든 감각이 둔해지는 계절. 무휼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따금 방지는 이불에 누워 무휼의 맥박을 짚어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방지는 말이 없었다. 평소에도 말이 없었지만 그 때만은 무휼이 무슨 말을 걸어도 답하지 않았다. 낡은 선풍기가 시끄럽게 돌아가고, 멀리서 매미가 우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둘은 잠에 빠졌다. 두근 두근, 어디선가 자꾸 맥박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휼은 방지의 도움 없이는 제 맥도 짚지 못했다. 몇 번이고 알려줬는데도 무휼은 맥박이 손목 어디서 뛰는지 감을 못 잡았다. 방지가..
내 죽음으로서 형이 완성되는 거야. 효민이 정구에게 가지는 궁극적 목표는 그에게서 악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정구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악. 죄와 그에 따라오는 죄책감. 정구를 불러내며 효민은 생각해본다. 정구에게 자신은 처음이 아닐지 모른다. 모든 면에서. 정구는 제가 가지는 악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구는 자신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 행동에 대한 합리화, 그에 따라 안도하는 자신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삶의 열망. 문제라는 것은 일생을 제 옆에 따라붙은 친구였다. 반갑지 않은 손님은 언제나 제게 찾아왔고, 정구는 불가항력으로 문을 열어주고 만다. 이번에는 단지 그 문제가 이효민이라는 사람의 형태로 저를 찾아왔을 뿐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불가항력이 아닌, 일말의 희망으로 정구는 문을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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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는 고양이를 길렀었다. 오드아이였었는데, 아는 지인에게 부탁받았으나 지인이 죽어버렸기에 대신 키우게 된 고양이였다. 존나게 비싼 거라고 신신당부하고 가더니만, 제 고양이까지 놓고 간 외국에서 죽어버렸단다. 단순한 사고였다고들 한다. 사고인지 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건데. 정구는 이제 기억도 잘 안 나는 지인의 이름을 대충 뇌까렸다. 이… 뭐였더라. …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성이 이 씨였다는 것은 기억이 났지만. 정구의 별 쓸모 없는 인맥중에서도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구는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돈이나 떼어먹을걸. 제 품 안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정구는 그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비싼 고양이라길래 어떻게 될 지 몰라서 어떻게든 맡고 있긴 한데. 어두운 방 안에서 자꾸만 빛나는 ..
효민이 정구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숨을 내쉬자 정구가 간지럽다며 웃었다. 이효민, 하고 한숨을 내쉬듯 뱉는 제 이름이 기분좋아 효민은 몇 번 더 고개를 부벼댄다.형 냄새 나.내 냄새가 뭔데.정구가 실소하며 물었다. 몰라. 비료냄새랑, 아저씨 냄새도 좀 나고. 내 냄새도 나고…. 비누냄새. 그리고 그냥 형 냄새. 킁킁대다 이내 정구를 끌어안는다. 오늘 왜 이래. 잠시 머뭇거리다 저를 안는 손이 따뜻했다.시발…. 존나 이상해.뭐가 또 이상해.몰라. 그냥. 존나 막…. 간질간질하고 그런 게. 좆같아.그러냐?정구가 효민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효민과 엇비슷한 모양새였다. 너도. 네 냄새 나. 내 냄새는 뭔데. 그냥 네 냄새. 내 냄새도 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