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끔찔끔

관웅석율

ㄱㅏ가 2016. 7. 19. 00:08

줄바꿈이 없다


애매한 아고물 과눙석률.... 학교가 멀어서 지하철로 통학하는 한석율. 고2. 같은 시간에 같은 지하철을 타는 천관웅. 언제나 아침용 두유를 쪽쪽 빨다가 다 먹으면 쓰레기통 대용인 듯한 편의점 봉투에 넣고 이어폰을 귀에 꽂음. 항상 같은 자리가 아니면 서 있는데 그 자리마저 일정함. 그런 한석율을 지켜보는 천관웅. 아직도 저런 학생이 있구나 싶어서.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오는 시간마저 일정해짐. 관웅은 보통 10~11시면 퇴근하는데 그중 열에 일곱은 석율과 마주치는 거. 친구와 함께일 때도 있고 혼자일 때도 있는데 시험기간에 (아마 석율의 학교는 그 쯤 시험이 끝났을 거라고 관웅은 예상하고 있음) 꾸벅꾸벅 조는 석율이를 발견. 자기 가방 안고 조는데 곧 있음 걔가 내리는 데라서 어쩌지. 하다가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 빼고 톡톡 치겠지. 학생, 내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벌떡 일어난 석율이 예, 예? 하고 두리번거리다 정거장을 봄. 헉 진짜네!! 감사합니다!! 헉.. 진짜 감사해요!! 석율은 몇 번이나 인사하고 내림. 그게 또 학생답고 귀여워서 픽 웃고 석율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음. 그리고 다음 날 지하철을 타서 자기가 앉는 자리가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서 두리번대는 한석율. 천관웅을 발견하자마자 조심조심 걸어가서 빵 하나를 건넴. 계시네! 맨날 이거 타잖아요. 제가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렇더라구요. 어제 감사했어요. 웃으며 됐다고 먹으라 하는 한석율. 안 되는데.. 하고 올려다보다 관웅 손을 잡고 빈 자리로 이끔. 아저씨 여기 앉아요. 그래도 돼? 너도 맨날 여기 앉잖아. 에이. 어제 저 깨워주셨잖아요. 어디서 내려요? 너보다 멀리서. 그건 아는데... 너보다 다섯 정거장 뒤. 아! 나 거기 가봤는데! 회사 큰 거 있죠 거기에. 내가 거기 다니는데. 헐 대박. 능력자네. 잘 보여야겠다. 금새 친해진 둘이었고 결국 갈 때 석율이 기어코 관웅의 번호까지 따감. 아저씨 가짜 번호 치지 마요. 내일 또 볼 거니까. 그렇게 헤어지고 밤이 되고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아님) 하여간 그러고 퇴근하면 몇 정거장 후 석율이 탐. 일부러 석율이 타는 칸에 있던 천관웅이 살짝 손을 흔들어주자 어! 하고 반응하는 석율이. 아저씨 또 보네요. 아까 문자 보냈는데 봤죠? 답장 했잖아. 하하 예의상 물어본 거예요. 그건 별로 예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게 아닌데. 아 뭐 어때요. 지금 퇴근해요? 어. 너는? 요새 좀 늦는다? 늦은 지 얼마나 됐는데. 저번에 시험 보고 성적 낮아졌다고 학원 끊었거든요. 아홉 시 반에 끝나요. 너무 늦죠? 아 너무 싫어. 학생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뭐가 그 정도예요. 아저씨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그날 이후로 친해져서 석율이 공휴일이나 현장체험학습, 쉬는 날엔 관웅이 문자 보내고 창립기념일이나 출장이나 빠질 때는 석율이 연락하는 관웅석율. 평일 쉬는 날에 보충이라고 갈 때면 사복 입고 가는데 그거 요란하다고 비웃는 관웅에게 화내는 석율이가 너무 평화롭겠다. 그렇게 거의 1년을 지내다 다른 데로 발령난 관웅을 끝으로 연락만 몇 번 하다 그마저도 뜸해짐. 가끔 추억하는 인연이 된 두 명. 또 10년 가깝게 지나고서야 만나는데 그게 원인터에서. 영3팀에 과장 새로 왔대서 다다다 내려갔는데 이게 누구야. 아저씨? 석율이? 주변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야? 하면 한석율이 먼저 아니에요. 그냥 처음이라 장난을 좀..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천과장님!! 하ㅏ하 처음뵙네요. 인사하면 천과장님은 어... 그러고 받아주긴 하는데 뭔가 찝찝하겠지. 계속 자기 팀에서 장그래랑 떠드는데 장그래가 가라고 가라고 해서 가려 하면 과장님도 나가겠지. 엘리베이터에 둘만 있으면 우리 담배 좀 필까? 담배 펴? 라이터를 건네면 주머니에서 자기 담배 꺼내서 과장님 라이터로 불 붙이고 나서 답함. 예. 언제부터? 몇 년 됐어요. 오랜만이다. 저도요. 아직 거기 살아? 아뇨. 혼자 집 하나 구했어요. 어디? ... 아저씨 사는 데 주위. 픽 웃고 담배 한 모금 빨면서 말하는 게 머리는 아직도 똑같네. 그게 너무 과장님다워서 석율이 웃음. 아저씨는 그냥 다 여전하네. 웃는 게 여전히 고등학생이라 따라 웃어버리는 천관웅과 그냥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 한석율. 아저씨가 내 고등학교 시절을 다 쥐고 있어요. 멍하니 웃음짓는 석율과 내가 왜? 묻는 관웅에게 난 아저씨밖에 생각 안 나는데. 나 사실 그 때 학원 갔던 거 아니에요. 알았어요? 도리질치는 과장님에게 담배연기를 뱉어보고 웃어보임. 알 리가 없지. 그 때 엄마아빠랑 나랑 좀 문제있어서, 다른 데서 지냈거든요. 내가 맨날 타고 내린 데 있죠, 거기 우리 집 아니에요. 사실 지금 집이 거기고. 그럼 거의 1년 가까이 부모님이랑 따로 지냈다고? 아녜요! 9월달부터는 내리고 다른 칸에 다시 타서 갔어요. 진짜 모른 거야? 대박. ... 아저씨, 아니 과장님. 흠흠. 만난 기념으로 정식으로 우리 집 데려가도 돼요? 슬쩍 흘겨보다 벌써 세 개비째인 담배를 비벼 끈 관웅이 답함. 그래. 순간 머리를 지나가는 자기 팀 막내와 자기 동기는 제쳐두고. 세 번정도 갈아 탄 지하철에서 석율은 평소 앉던 자리를 잘도 찾아 앉음. 퇴근시간인데 어떻게 자리가 났다며 신이 나 앉는 석율에게 관웅이 물음. 넌 왜 거기 앉았어? 석율이 답이 없자 재차 물었는데, 그제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는 석율. 여기가 제일 아저씨가 잘 보였거든요. 그러는 아저씨도 맨날 똑같이 서 있었잖아요. 왜 그랬어요? ... 나도 여기가 네가 제일 잘 보였어. 아, 아이씨 진짜, 쪽팔리게. 으. 물음은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가는 길에서도 계속됨. 아저씨 나 언제부터 좋아한 거예요? 엄청 전부터. 너 처음 볼 때부터. 너는? 아저씨보다 훨씬 전에. 뭐? 언제부터인데. 나 아저씨 본 날부터 그 칸에서 지하철 탄 거예요. 뭐? 아 진짜, 내가 아저씨 따라다닌 거라고!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빨개져있을 석율의 얼굴이 생각나서 관웅은 괜시리 즐거워짐. 이거 어떡하냐. 10년 전 짝사랑이 이제야 이루어졌네. 석율이 웅얼웅얼 말을 이어나감. 내가 진짜 요새는 아저씨 생각도 안 나고 괜찮았거든요. 여친도 사귀고. 근데 보자마자 막 다시 좋아지는데 어떡하지 진짜. 아저씨가 나쁜 거예요 이거는. 아니지. 네가 나쁜 거지.